다시는 소인을 무시하지 마라
소인과 먹물 사이에서 고민한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 부터 그 고민을 했거든요. 지금은 배운자의 탈을 쓰고 다니지만 제 안에 반은 분명 쇤네(소인네) 입니다. 하지만 그게 부끄럽거나 하진 않은게..인천에서도 변두리 출신인 이야기는 몇 번 드린 것 같죠? 이번엔 그 얘긴 지나가구요, 탈북 실향민인 친가 얘기를 좀 할께요.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 쪽 식구들은 가까스로 춘천에 자리잡았습니다. 전후 힘든 시기를 살아온 고모, 삼촌들이 겪어온 세월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는 얼핏 들어서만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가족 내에서 할아버지가 누구는 더 이뻐하고 누구는 덜 이뻐하고 이러다보니 이러저러했던 과거의 억울함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시더라구요. 오늘날 저의 소인성 함양과 차후 연구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가만보면 이 사회는 자존감의 존(尊), 이 리스펙트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혹은 그 사람들끼리 너무 가차없다고 느낍니다. 사랑과 관심의 결핍은 상상 외로 무섭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그나마 국물도 없다는 위기 의식을 어릴때부터 가지고 살다온 우리 세계를 우습게 보시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비로소 말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세를 넓혀가고 있거든요. 배우신 분이라면 혹시 서발턴(subaltern)이라 표현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소인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왜냐면 조선때부터 절대 다수는 소인이었으니까요. 먼저 우리 소인이 누구인가. 누구인지 이해를 돕고자 몇 가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한 삼십여가지(!)의 패턴 중에 간략하게 다섯가지만 먼저 보여드리자면,
첫째로 위계에 민감합니다. 심리적,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서 있다보면 집단 내에서는 나의 위치를 빠르게 확인해야 합니다. 디딜 땅이 있어야 뭐라도 비비듯이 바닥을 다지는 과정입니다. 내 밑에 한 사람이라도 놓기 위해 내가 가진 이점을 남과 급하게 비교합니다. 나이, 성별, 항렬, 재산 등 객관적 수치를 파악하고 나보다 낮은 위치의 사람을 골라냅니다. 그래서 질문은 빠르고 집요한 ‘훅훅 들어오기' 를 즐겨합니다.
둘째로는 사랑을 준다 싶은 집단 혹은 네트워크에 빠져듭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란 노래말이 참 좋지 않습니까? 사이비 집단이나 다단계는 말할것도 없고 정치를 비롯한 각종 단체나 의문스러운 모임들이 살면서 응당 받았어야 할 여러 욕구를 실현해줍니다. 이걸 비난하거나 동정하기는 쉽겠죠. 하지만 그 어느곳에서도 이런 서비스를 받지 못해서 그런걸 과연 뭐라 할 수 있을까요?
세째로 ‘나도 힘들어' 라는 태도입니다. 이는 약자에 대한 냉혈함을 조금은 설명해줍니다. 남에 대한 배려란 배려받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공공교통에서 왜 저리 밀치고 들어갈까 짜증이 나시겠지만 ‘나도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거리에서 시위라도 할라치면 공감보다는 시큰둥해지거나 욕이 나가겠죠. 그 동안 내 얘긴 아무도 안 들어줬으면서.
네째로는 큰 의제나 담론을 좋아합니다. 집안에서라면 효, 크게는 국가 차원이야기는 더 좋구요. 예전에 개그맨 이수지씨가 ‘오빠는 아부지한테 그럼 안돼! ‘ , 틈만나면 다른 가족한테 일갈하는 이런 캐릭터를 개콘에서 선보였었는데요, 저희 집안에도 그런 사람 한 분 딱 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편애의 피해자라면 ‘부모가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어?’ 로 나갈 것 같은데 그 반대이니 신선하죠? 효와 충, 애국, 공정성, 모두가 공감하는 좋은 가치나 어떠한 도덕적 의제를 무기로 휘두르며 상대방을 찍어누르려 할 때는, 아 부엌칼도 쓰임에 따라 무기가 될 수 있구나 생각해봅니다. 집히는게 이거라 이걸 휘두른다.
다섯째로는 조바심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 보셨으면 낮은 자존감과 위기의식이 자연 조바심으로 연결됨을 이해해주실 것 같습니다. 여유를 가질 겨를이 살면서 별로 없었습니다. 마음과 태도는 함께 불안하고, 과정으로 칭찬받은 적은 없기에 결과에만 전전긍긍합니다.
자 여기까지 제 얘기를 섞어서 말씀 드렸지만, 어 이거 내 얘기 아니야 하시는 분들, 소인되기가 그리 쉬운 건 아닙니다. 살면서 한 번도 승리의 순간이 없었어야 순혈 소인에 가까운데, 그 정도 박탈을 경험하신 분은 이 글을 읽고 계시지도 않으거란 말이죠.
그리고 아무래도 이 글, 예술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이 보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현대 예술쪽 분들이요. 저도 이러저러하게 십년 가까이 그 언저리에서 돌고 있는데요, 요즘 부쩍 소인의 반격을 느끼는 중입니다. 제 안의 소인도 깨어나고 있구요. 고고하면서도 빈궁한 편인 대부분 현대 예술판이 소인계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냐고 말씀하시면, 저는 영국 맨체스터 어비스(Urbis exhibition center) 얘기를 잠깐 드리고자 합니다. 1998년에 도시 문화 관련 전시 공간으로 맨체스터시의 프로젝트로 탄생한 이 곳은 유수의 현대미술 전시를 2010년 즈음까지 보여주다 지금은 축구박물관으로 바뀌었습니다. 맨체스터하면 또 축구로 유명한 곳 아니겠습니까. 지역에서 어떤 논의를 거쳐 어떤 과정으로 바뀌었는지는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볼만한 내용입니다.여기서 길게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단지 저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지역 연구를 하며 듣게 되는 광주나 부산 비엔날레에 대한 지역민의 생각, (비엔나 쏘세지로 작년 광주 비엔날레를 홍보하려 했던 광주시 에피소드도 생각나네요), 인천과 대전 등 없어지거나 변화한다는 현대 미술 작가 레지던시와 현대 미술 전시 공간도 저는 소인의 반격 혹은 백래쉬로 이해하려 합니다. 진위를 알 수 없지만 전해 들은대로 조개구이집이 인천 아트플랫폼에 들어오게 된다면 우리도 맨체스터의 길로 가고 있다고 말해야 할까요? 누가 목소리를 높여가며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그리 크지도 않은 예산을 쓰는 현대 예술을 고깝게 여기고 있는지 저는 알 것 같습니다. 참고로 맨체스터 축구 박물관은 해마다 많은 방문객이 특히 동아시아로부터 와서 쏠쏠한 수입을 시에 올려주고 있다고 합니다.
수 많은 의문이 듭니다. 아르코미술관에서 한적하게 전시를 보고나서 우연히 코엑스 일러스트 페어에 갔을 때 느꼈던 압도적인 관객수의 차이에 놀랐던 기억에 그 사진을 아직 저장해놓고 가끔 꺼내어 봅니다. 어랏, 미술 시장이 없는건 아니네? 소셜미디어(쓰레드)에서 제가 주로 팔로우하는 수 많은 ‘비'현대 미술 아티스트들은 또 어떤지 아십니까? 저는 멀티버스 세계 또 다른 스파이더맨들이라 생각하고 연구중인데요, 그 분들의 작업에 대한 깊은 고민이나 승리의 경험을 보고 자연스레 연결된 작업계정들을 보면 제가 아는 미술과는 너무나 생경한 모습에 뭐라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아마 여러분이 인사동 전시에 굳이 방문하시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그 벽을 느끼고 계실 것 같습니다. 다른 세계는 같은 시공에 분명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의 추측은, 우리가 의도했건 안했건 간에, 현대예술에서 모종의 모멸감을 느꼈던 소인계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예술은 자생할 수 있나보다 입니다. 잠깐의 부흥을 맛봤던 저 같은 (소인)현대 미술가는 이제 다른 숨을 곳을 찾아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제가 왜 몇 년에 걸쳐 소인의 세계에 매혹되어 있는지 말씀드렸습니다. 말씀드렸던 생존의 위협도 물론 있구요, 같은 시대 예술이라 하는데 동시대 미술의 그 시대가 한국에서는 지금은이 아닌가 하는 고민도 있습니다. 서울 외 지역 얘기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저도 모르게 현대 미술이라고 하는 ‘장르'에도 동경과 질시를 동시에 체화하기도 합니다.
“내가 낸 세금가지고 뭐하는거야 지금?” (세금 별로 안냄)
‘우리’끼리만 보게되는 창작의 벽에 살짝 균열을 내고 싶은것이 제 욕심입니다. 앞으로 저의 소인 연구에 많은 제보와 도움 감히 부탁드려보겠습니다.
다시는 소인을 무시하지 마라
소인과 먹물 사이에서 고민한 이야기입니다. 어릴 때 부터 그 고민을 했거든요. 지금은 배운자의 탈을 쓰고 다니지만 제 안에 반은 분명 쇤네(소인네) 입니다. 하지만 그게 부끄럽거나 하진 않은게..인천에서도 변두리 출신인 이야기는 몇 번 드린 것 같죠? 이번엔 그 얘긴 지나가구요, 탈북 실향민인 친가 얘기를 좀 할께요. 전쟁이 끝나고 아버지 쪽 식구들은 가까스로 춘천에 자리잡았습니다. 전후 힘든 시기를 살아온 고모, 삼촌들이 겪어온 세월이 얼마나 험난했는지는 얼핏 들어서만 알고 있습니다. 거기에 더해 가족 내에서 할아버지가 누구는 더 이뻐하고 누구는 덜 이뻐하고 이러다보니 이러저러했던 과거의 억울함을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하시더라구요. 오늘날 저의 소인성 함양과 차후 연구에 크게 기여하셨습니다.
가만보면 이 사회는 자존감의 존(尊), 이 리스펙트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혹은 그 사람들끼리 너무 가차없다고 느낍니다. 사랑과 관심의 결핍은 상상 외로 무섭습니다. 까딱 잘못하면 그나마 국물도 없다는 위기 의식을 어릴때부터 가지고 살다온 우리 세계를 우습게 보시면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제 비로소 말하기 시작했고 서서히 세를 넓혀가고 있거든요. 배우신 분이라면 혹시 서발턴(subaltern)이라 표현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소인이란 말을 좋아합니다. 왜냐면 조선때부터 절대 다수는 소인이었으니까요. 먼저 우리 소인이 누구인가. 누구인지 이해를 돕고자 몇 가지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한 삼십여가지(!)의 패턴 중에 간략하게 다섯가지만 먼저 보여드리자면,
첫째로 위계에 민감합니다. 심리적, 경제적으로 벼랑 끝에 서 있다보면 집단 내에서는 나의 위치를 빠르게 확인해야 합니다. 디딜 땅이 있어야 뭐라도 비비듯이 바닥을 다지는 과정입니다. 내 밑에 한 사람이라도 놓기 위해 내가 가진 이점을 남과 급하게 비교합니다. 나이, 성별, 항렬, 재산 등 객관적 수치를 파악하고 나보다 낮은 위치의 사람을 골라냅니다. 그래서 질문은 빠르고 집요한 ‘훅훅 들어오기' 를 즐겨합니다.
둘째로는 사랑을 준다 싶은 집단 혹은 네트워크에 빠져듭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란 노래말이 참 좋지 않습니까? 사이비 집단이나 다단계는 말할것도 없고 정치를 비롯한 각종 단체나 의문스러운 모임들이 살면서 응당 받았어야 할 여러 욕구를 실현해줍니다. 이걸 비난하거나 동정하기는 쉽겠죠. 하지만 그 어느곳에서도 이런 서비스를 받지 못해서 그런걸 과연 뭐라 할 수 있을까요?
세째로 ‘나도 힘들어' 라는 태도입니다. 이는 약자에 대한 냉혈함을 조금은 설명해줍니다. 남에 대한 배려란 배려받아본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공공교통에서 왜 저리 밀치고 들어갈까 짜증이 나시겠지만 ‘나도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거리에서 시위라도 할라치면 공감보다는 시큰둥해지거나 욕이 나가겠죠. 그 동안 내 얘긴 아무도 안 들어줬으면서.
네째로는 큰 의제나 담론을 좋아합니다. 집안에서라면 효, 크게는 국가 차원이야기는 더 좋구요. 예전에 개그맨 이수지씨가 ‘오빠는 아부지한테 그럼 안돼! ‘ , 틈만나면 다른 가족한테 일갈하는 이런 캐릭터를 개콘에서 선보였었는데요, 저희 집안에도 그런 사람 한 분 딱 있습니다. 얼핏 생각하면 편애의 피해자라면 ‘부모가 나한테 해준게 뭐가 있어?’ 로 나갈 것 같은데 그 반대이니 신선하죠? 효와 충, 애국, 공정성, 모두가 공감하는 좋은 가치나 어떠한 도덕적 의제를 무기로 휘두르며 상대방을 찍어누르려 할 때는, 아 부엌칼도 쓰임에 따라 무기가 될 수 있구나 생각해봅니다. 집히는게 이거라 이걸 휘두른다.
다섯째로는 조바심이 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 보셨으면 낮은 자존감과 위기의식이 자연 조바심으로 연결됨을 이해해주실 것 같습니다. 여유를 가질 겨를이 살면서 별로 없었습니다. 마음과 태도는 함께 불안하고, 과정으로 칭찬받은 적은 없기에 결과에만 전전긍긍합니다.
자 여기까지 제 얘기를 섞어서 말씀 드렸지만, 어 이거 내 얘기 아니야 하시는 분들, 소인되기가 그리 쉬운 건 아닙니다. 살면서 한 번도 승리의 순간이 없었어야 순혈 소인에 가까운데, 그 정도 박탈을 경험하신 분은 이 글을 읽고 계시지도 않으거란 말이죠.
그리고 아무래도 이 글, 예술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이 보시리라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도 현대 예술쪽 분들이요. 저도 이러저러하게 십년 가까이 그 언저리에서 돌고 있는데요, 요즘 부쩍 소인의 반격을 느끼는 중입니다. 제 안의 소인도 깨어나고 있구요. 고고하면서도 빈궁한 편인 대부분 현대 예술판이 소인계와 무슨 관계가 있다고 그러냐고 말씀하시면, 저는 영국 맨체스터 어비스(Urbis exhibition center) 얘기를 잠깐 드리고자 합니다. 1998년에 도시 문화 관련 전시 공간으로 맨체스터시의 프로젝트로 탄생한 이 곳은 유수의 현대미술 전시를 2010년 즈음까지 보여주다 지금은 축구박물관으로 바뀌었습니다. 맨체스터하면 또 축구로 유명한 곳 아니겠습니까. 지역에서 어떤 논의를 거쳐 어떤 과정으로 바뀌었는지는 관심있는 분들은 찾아볼만한 내용입니다.여기서 길게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단지 저는 하나의 현상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지역 연구를 하며 듣게 되는 광주나 부산 비엔날레에 대한 지역민의 생각, (비엔나 쏘세지로 작년 광주 비엔날레를 홍보하려 했던 광주시 에피소드도 생각나네요), 인천과 대전 등 없어지거나 변화한다는 현대 미술 작가 레지던시와 현대 미술 전시 공간도 저는 소인의 반격 혹은 백래쉬로 이해하려 합니다. 진위를 알 수 없지만 전해 들은대로 조개구이집이 인천 아트플랫폼에 들어오게 된다면 우리도 맨체스터의 길로 가고 있다고 말해야 할까요? 누가 목소리를 높여가며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그리 크지도 않은 예산을 쓰는 현대 예술을 고깝게 여기고 있는지 저는 알 것 같습니다. 참고로 맨체스터 축구 박물관은 해마다 많은 방문객이 특히 동아시아로부터 와서 쏠쏠한 수입을 시에 올려주고 있다고 합니다.
수 많은 의문이 듭니다. 아르코미술관에서 한적하게 전시를 보고나서 우연히 코엑스 일러스트 페어에 갔을 때 느꼈던 압도적인 관객수의 차이에 놀랐던 기억에 그 사진을 아직 저장해놓고 가끔 꺼내어 봅니다. 어랏, 미술 시장이 없는건 아니네? 소셜미디어(쓰레드)에서 제가 주로 팔로우하는 수 많은 ‘비'현대 미술 아티스트들은 또 어떤지 아십니까? 저는 멀티버스 세계 또 다른 스파이더맨들이라 생각하고 연구중인데요, 그 분들의 작업에 대한 깊은 고민이나 승리의 경험을 보고 자연스레 연결된 작업계정들을 보면 제가 아는 미술과는 너무나 생경한 모습에 뭐라 반응해야할지 모르겠더라구요. 아마 여러분이 인사동 전시에 굳이 방문하시지 않는다면 보이지 않는 그 벽을 느끼고 계실 것 같습니다. 다른 세계는 같은 시공에 분명 존재하고 있습니다. 저의 추측은, 우리가 의도했건 안했건 간에, 현대예술에서 모종의 모멸감을 느꼈던 소인계를 불편하게 하지 않는 예술은 자생할 수 있나보다 입니다. 잠깐의 부흥을 맛봤던 저 같은 (소인)현대 미술가는 이제 다른 숨을 곳을 찾아야 할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제가 왜 몇 년에 걸쳐 소인의 세계에 매혹되어 있는지 말씀드렸습니다. 말씀드렸던 생존의 위협도 물론 있구요, 같은 시대 예술이라 하는데 동시대 미술의 그 시대가 한국에서는 지금은이 아닌가 하는 고민도 있습니다. 서울 외 지역 얘기에 관심을 가지다 보니 저도 모르게 현대 미술이라고 하는 ‘장르'에도 동경과 질시를 동시에 체화하기도 합니다.
“내가 낸 세금가지고 뭐하는거야 지금?” (세금 별로 안냄)
‘우리’끼리만 보게되는 창작의 벽에 살짝 균열을 내고 싶은것이 제 욕심입니다. 앞으로 저의 소인 연구에 많은 제보와 도움 감히 부탁드려보겠습니다.